한편유럽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모두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겠지. 우연히 온라인에서 방황을 하다가 흥미로운 사진들이 모여있었다. 유럽인들이 담은 중국의 100년전 모습이라는 제목의 사진인데. 100년 전 사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사진 느낌이 괜찮아서 이왕 유럽과 중국의 역사를 담아내면서 함께 등록한다.
유럽인이 찍은 중국모습인데, 유럽의 역사 정도는 포스팅 해줘야지?
선사와 고대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유럽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35000년경이다. 기원전 700년경 고대 그리스로부터 유럽의 고대사는 시작한다. 로마 공화정은 기원전 509년 성립하고 (줄리우스 시저)[[]] 기원전 1세기경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로마 제국이 된다. 기독교는 기원후 4세기에 로마 제국 국교가 되고, 6세기에 중요 도시였던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에 5두 주교 체제를 구성한다.
중세
유목민의 공격과 전염병으로 인해 로마 제국은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열된다. 이후 서유럽은 중세 시대가 열린다. 비잔틴 제국은 동쪽에서 문명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유지한다. 451년부터 지속되던 분리 상태에 1054년 교회의 대분열이 더해지고 이어서 서방에서는 무슬림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동방으로 십자군을 보낸다. 몽골의 침략과 흑사병으로 인해 봉건 사회는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함락되지만, 유럽은 신대륙을 1492년 발견한다. 유럽은 고전 문화의 재발견을 통해 중세 시대에서 깨어났다. 마틴 루터가 교황 권위를 공격하며 르네상스는 종교 혁명으로 이어졌다. 30년 전쟁, 베스트팔렌 조약, 명예 혁명은 팽창과 계몽의 시대의 주춧돌이 되었다.
근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은 생산력을 증가시켰다. 미국은 독자적인 정부를 세우면서 영국에 독립했다.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은 유럽 대륙의 정치 변화에 불을 지폈다. 이후 나타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15년까지 전쟁을 통해 유럽 대륙을 정복하며 사회 구조를 개혁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선거권을 가졌고 사회주의자와 노동자 조합이 형성되어 갔고 혁명은 1848년에 잇따랐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는 농노제가 1848년에 사라졌다. 러시아의 농노제는 1861년에 사라졌다.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재차 이루었다. 1870년부터 1871년까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에 공국의 집단이 모여 이탈리아와 독일이 형성되었다. 제국이 되어 지구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은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을 터뜨렸다. 전쟁의 절망에서 러시아 혁명은 사람들에게 '평화, 빵 그리고 토지'를 약속했다. 독일은 패배하였고,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경제적 파탄을 맞았다.
현대
전 세계에 걸친 대공황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 파시즘에 맞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승리 이후 냉전이라는 새로운 체제가 자리잡는다. 소련의 철의 장막에 의해 분리된 서유럽은 자유 무역 지역을 만들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 유럽 연합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징병제였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병역 제도를 모병제로 바꾸기에 이른다.
자. 그럼? 중국의 역사 한번 볼까?
황하 문명 탄생 이래 중국 본토에서는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이래 약 5000년 동안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반복해 왔다. 한나라 때 중화민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의 기틀을 세웠고, 당나라는 서유럽의 로마 제국과도 교류하였다. 송나라 때에는 중국 중세 문화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제1차 아편 전쟁과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가 대영 제국에 패배한 결과, 중국 본토는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했고 홍콩은 대영 제국에 넘어갔으며 마카오는 포르투갈에 넘어갔다.
청나라의 무능에 반발하여 태평 천국 운동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한족의 개혁파 관료들에 의해 양무 운동과 변법 자강 운동이 차례로 일어났으나 열강의 간섭으로 실패했다. 한편 서태후 등 보수파의 사주로 반외세 운동인 의화단 운동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신해혁명이 일어나 1912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하지만 각지의 군벌에 의한 내전이나 몽골, 티베트의 독립 운동 등으로 말미암아 중화민국은 분열되었다. 또한 1930년대에는 국공 내전(중국에서는 보통 "해방 전쟁"이라 칭함)과 중일 전쟁(중국에서는 보통 "항일전쟁"이라 칭함)이 발발하여 중국 각지가 전장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중앙 정부가 2개 이상인 때에도 있었다.
그 후 중일 전쟁 중에 세력을 늘려 온 중국 공산당이 1945년의 일본(日本) 패배 이후 국공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매년 10월 1일을 국경절로 정하고 이를 기념한다.
신화시대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고대의 전설적 제왕들이다. 삼황(三皇)은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를 말하며, 오제(五帝)는 황제헌원(黃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陶唐氏), 제순중화(帝舜重華:有虞氏)를 지칭한다.
문명의 태동
장강 문명(長江文明)
황하 문명(黄河文明)
진나라 이전의 시기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선진 시기'(先秦時期)라고도 한다. 하(夏) (기원전 21세기 - 기원전 17세기)의 경우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으나, 대체로 실존했던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1] 하를 무너뜨리고 세운 상(商) (기원전 17세기 - 기원전 11세기 중반)은 은허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 은(殷)이라고도 부르며, 한때 신화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은허의 유적 발굴 이후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되었다.
주(周) (기원전 1050년 경 - 기원전 256년)는 본래 상(은)나라의 제후국이었으나, 상(은)나라 말기 주왕(紂王)의 폭압으로 상(은)나라를 무너뜨리고 패권을 잡은 나라다. 이 때 주의 왕을 처음으로 '천자'(天子)라고 불렀다. 주의 패권은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가 되면서 약해지기 시작한다. 춘추 시대에는 여러 주나라의 제후국들이 주의 천자를 존중하고 각자의 세력을 다투던 시기로, 세력이 강한 제후국들 중에 주 왕실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한 제(齊)-환공(桓公), 진(晉)-문공(文公), 초(楚)-장왕(莊王), 오(吳)-합려(闔閭), 월(越)-구천(勾踐)의 5제후를 춘추 오패라고 부른다. 전국 시대로 들어서면서 천자에 대한 충성마저 약화되기 시작한 시기로, 진(秦), 한(韓), 제(齊), 위(魏), 조(趙), 연(燕), 초(楚)라는 전국 칠웅이 차례로 왕을 칭하고 오로지 천하 통일을 위해 질주하였다.
고대사
진한 시기
진(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7년)은 한(韓), 제(齊), 위(魏), 조(趙), 연(燕), 초(楚)를 무너뜨리고 중국 본토를 통일하였다. 진은 이어 모든 제후국을 폐지하고 조정에서 직접 다스리는 군현제를 처음 실시하였다. 이어 진왕 영정은 처음으로 '황제'(皇帝)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진(秦)나라의 무리한 통치와 폭압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진나라는 진 이세황제의 치세에 몰락하여, 그 뒤 멸망하였고, 초한전을 거쳐 한나라가 중원을 통일한다. 한나라는 200년 넘게 유지된 중앙집권적 국가로 서양에 최초로 이름이 알려진 나라이기도 하다. 전한(前漢) (기원전 206년 - 서기 9년)은 한나라(전한)의 외척이었던 왕망이 황위를 찬탈하여 세운 신(新) (9년 - 23년)에 의해 잠시 명맥이 끊기나, 신나라는 급격한 개혁이 민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각지의 반란으로 망하였고, 한나라(전한)를 계승한 국가인 후한(後漢) (25년 - 220년)이 다시 통일 국가를 이루었으나, 무제 이후의 황권은 환관들과 외척들로 인하여 크게 약화되었다. 위에게 멸망당했다.
위진 남북조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삼국 시대(三國時代) (220년 - 280년)라고 하지만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39년 - 589년) 까지 포괄하여 위진 남북조 시기라고 한다.
위(魏)는 조비가 후한의 황제로부터 직접 제위를 물려받은 국가로 중원 지역을 차지하였다. 촉(蜀) 후한 황실의 후예인 유비가 계승하였으나, 세력권은 서남 지방에 한정되었다. 한편 손권의 오(吳) 독자적인 세력으로 장강 이남을 차지하였다. 위는 사마염의 서진(西晉) (265년 - 316년)에게 승계되며 서진이 삼국을 통일하게 되나, 초기부터 황실 분란인 팔왕의 난 등으로 혼란스럽다가, 흉노족의 전조에게 멸망당한다. 서진의 멸망 이후 서진이 있던 자리에 16개의 국가가 들어서 패권을 겨뤘으니 이를 십육국 시대(十六國時代) (316년 - 439년)라 한다. 비한족 국가인 전조(前趙)·후조·전연(前燕)·후연· 남연, 관중(關中)에 있던 전진(前秦)·후진·서진 및 하투(河套)의 하(夏), 사천(四川)의 성한(成漢), 하서(河西)의 후량·북량·남량과, 한족 국가인 북연, 하서(河西)의 전량(前涼), 서량이 있었으며, 전조, 후조, 전진 등이 한때 큰 세력권을 과시했으나 결국 북조의 북위로 통합된다. 북위(北魏)는 선비족 탁발씨의 국가로, 3대 태무제의 시기에 화북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북위는 곧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리되고, 동위는 북제(北齊), 서위는 북주(北周)로 이어진다. 북제는 이후 북주에 흡수되고, 북주는 왕실 외척인 양견에 의해 수(隋)로 국호를 바꾸게 된다.
한편 서진 황실의 계승을 천명한 동진(東晉)은 서진의 영토를 되찾으려 여러 차례 노력했으나 모두 실패한다. 세력권은 주로 장강 이남으로 한정되었다. 동진을 계승한 국가들이 이어진 왕조를 남조라고 하며, 송(宋)=유송(劉宋), 제(齊)=남제(南齊), 양(梁), 진(陳)이 있다. 수나라에게 멸망당한다.
수나라, 당나라 시대
수(隋) (581년 - 618년)는 북주의 외척인 양견에 의해 건국된 나라로,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고 통일하나, 무리한 원정과 과도한 세금 징수로 인해 건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하였고, 당(唐) (618년 - 907년)로 이어진다. 당나라는 비단길을 통한 유럽과의 교역을 활성화시켜 중국 고대 문화를 서양에 전파하였다. 한편 당나라의 황후이던 측천무후가 조정을 장악하고 아들인 당의 황제를 황태자로 격하시키고 국호를 잠시 주(周) (690년 - 705년)로 바꾼다. 측천무후의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공포 정치를 펼쳤으나, 인재 중심의 정치 역시 펼쳐서 백성들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측천무후 이후 다시 국호를 당으로 바꾸게 된다. 후량에게 멸망당한다.
중세사
오대십국 시대 (907년 - 960년)는 화북의 정권을 다투던 5개의 대국과 나머지 10개의 소국이 혼재했던 시기이다.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송(宋) (960년 - 1279년)이 다시 중원을 통일하였다.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하였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로 상비 해군을 창설하였다. 또한 문화 정치를 펼친 왕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확대되었으며, 예술, 사상 및 각종 실용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져, 문화적으로 풍요롭던 시기였다. 그러나 내몽골 지역과 만주 지역을 차지한 거란족이 세운 국가인 요(遼) (916년 - 1125년)에 의해 베이징 이북의 많은 지역을 빼앗기고, 요나라와 서하에 사실상의 조공을 납부하며 별 위세를 떨치지 못하다가, 요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여진족이 요나라를 정복하고 세운 금(金) (1115년 - 1234년)에게 화북 지방을 빼앗기고 멸망한다. 이 때까지를 북송(北宋)시대라고 하고, 이후 북송의 황실을 계승한 왕조를 남송(南宋)이라고 한다. 몽골 제국과 함께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몽골 제국을 계승한 원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근대사
서구 열강 세력의 이권침탈 풍자화
원(元) (1271년 - 1368년)은 만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동유럽까지 지배한 몽골 제국의 적장자인 쿠빌라이 칸이 몽골고원, 만주, 화북을 아우르는 지역의 한족식으로 세운 국가로,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본토를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주원장이 원나라를 몽골 고원으로 몰아내고 명(明) (1368년 -1644년)이라는 한족 왕조를 건국한다. 초기에는 외국과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과시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임진왜란 등 외부 원정의 부담과 문화 침체로 쇠퇴하다가 사르후에서의 패배와 숭정제의 실책으로 멸망한다. 명나라의 몰락을 틈타 금나라의 후예인 만주족이 후금을 세워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다. 청(淸) (1616년 - 1912년)은 후금을 계승한 왕조로, 초기에는 한족을 정책적으로 차별했으나, 전체적인 제도 및 왕조의 분위기는 명나라와 유사하였다. 양무 운동을 통해 근대 국가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서구 열강 세력들의 이권침탈이 심화되면서 더욱 더 쇠퇴하고, 1911년에 신해 혁명으로 멸망한다.
한편 남명(南明) (1644년 - 1662년)은 멸망당한 명나라의 왕실을 계승한 나라로, 명의 부흥을 기도하였으나 청나라에 망하였다. 남명의 신하였던 정성공은 타이난으로 건너가 정씨왕국을 설립하여 청나라에 대항하지만 3대째에 복속당한다.
공화국 시대
이 부분의 본문은 중화민국의 역사,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입니다.
1928년부터 사용된 중화민국의 국기
중화민국(中華民國) (1912년 - 현재)은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수립된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이다. 이후 각 지방의 실력자들이 군벌로 등장하였다. 특히 위안스카이는 자신이 거느리는 북양 군벌을 이끌고 쑨원으로부터 대총통 자리를 넘겨받았다. 위안스카이가 1916년 사망하자, 이후 그의 부하들이 할거했는데, 대표적으로 안휘파의 돤치루이, 직예파의 펑궈장, 차오쿤, 오패부, 봉천파의 장쭤린, 산시파의 옌시산 등이 중국 각지에서 할거하였다. 한편 중화민국 최초의 공화정 체제인 북양 정부는 1928년까지 존속했다. 그 후 북벌이 재개되고 모든 세력이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 수중으로 들어왔다. 이로써 난징을 수도로 하는 중국 국민당 주도의 국민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다.
한편 천두슈(陳獨秀)와 마오쩌둥(毛澤東)을 주축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이 농민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었다. 중국 국민당은 중국 공산당과 제1차 국공 합작을 이루어냈으나, 북벌 과정에서 분열이 일어나, 국공 내전이 시작되었다. 국민 정부는 1931년 만주사변 이래 일본의 침략에 무저항주의를 택하고 오로지 '공산당 타도'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폈으나, 시안 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되어 항일 민족 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중일전쟁 중에 수도 난징이 점령당하고 충칭을 임시 수도로 정해 옮겼지만, 끝내 일본 제국이 패망하자 난징으로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전후 처리 과정에서 내분이 생겨 제2차 국공 내전이 발발하였다. 한편 국공 내전 중에 정부는 새로운 중화민국 헌법을 통과시켜 국민 정부를 헌정 체제로 격상시킨다. 1949년 4월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수도 난징을 점령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사실상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기세를 몰아 중국 공산당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이후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다. 이 과정에서 중화민국 정부는 패닉 상태에 빠져, 국민당에 내분이 일어나 공산당 밑으로 들어가거나(중국 국민당 혁명위원회) 타이완, 영국령 홍콩 또는 국외 등지로 피난하는 국민당 관계자도 속출했다. 한편 중국 국민당은 장제스의 지도하에 현재의 타이베이 시로 정부를 이전하여 지금까지 중화민국의 법통이 계승되고 있다. 냉전 시대에 한국 전쟁 덕분에 중화민국은 영토의 대부분을 잃었어도 국제적 위상이 거의 변함없었다. 그러나 점차 탈냉전 시대에 들어서게 되면서 실리 외교를 선호하는 세계 다수의 국가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쪽으로 기울었다. 현재 중화민국을 중국의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있는 나라 수는 대폭 감소했지만, 서로 중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자처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두 개의 중국'으로 정부가 병립된 분단 국가로서 동아시아의 정치외교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한편 일본 제국이 세운 괴뢰 정부로 왕징웨이 정권, 몽강연합자치정부, 만주국이 있으나 국민 정부에 통합된다.
국공 내전으로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의 주도로 중국 대륙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1949년 - 현재)이 건국되었다. 소비에트 연방과의 유대 관계를 통해 여러가지 경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국경 분쟁을 일으키는 등 소련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1971년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를 통해 중화민국을 제치고 유엔에 입성하였으며 국제 사회로부터 널리 인정받게 된다. 1971년 '핑퐁외교'로 불리던 리처드 닉슨의 베이징 방문을 계기로, 마침내 1979년 중화민국의 강력한 후원국이던 미국과도 수교하게 된다. 덩샤오핑(중국어: 鄧小平) 이후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경제 대국 반열에 진입하였다. 1990년대에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를 차례로 편입하였다. 2008년에는 베이징 하계 올림픽이, 2010년에는 상하이 엑스포가 개최되으며,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다.
자~ 이정도??
하암~ 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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